비윤리적 수의사 처벌 강화된다
수의사법 개정, 수의사회 면허정지 요구 가능
대한수의사회가 비윤리적 수의사에 대한 면허효력 정지 처분을 요구할 수 있는 수의사법 개정안이 7월 24일 시행된다. 그동안 수의사가 수의사법이나 윤리강령 등을 위반해도 법적 강제성이 없다 보니 내부의 자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수의사에 대해 대한수의사회에서 윤리위원회를 개최하고 회의 결과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에 수의사 면허효력 정지 처분 등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수의사회 윤리위원 구성
대한수의사회에 윤리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총 11명으로 구성된다. 그 중 4명은 수의사가 아닌 외부 인사로 선임해야 한다. 윤리위원의 임기는 3년으로 한 차례 연임을 할 수 있어 최대 6년까지 활동할 수 있다. 중립성 확보를 위해 상정 안건의 당사자와 일정한 관계가 있는 위원은 심의 의결에서 배제하도록 했다.
윤리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할 수 있는 안건은 ▲진료기술상 판단이 필요한 사항 ▲면허 효력 정지 처분을 요구하는 사안이다. 수의사의 면허 효력 정지 처분 이전에 수의사의 동물 진료 행위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을 구하는 것도 윤리위원회의 역할 중 하나다.
또한 수의사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도 윤리위원회 회의 대상이다. 수의사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는 ▲허위광고 또는 과대광고 행위 ▲환자 유인 행위 ▲약사법에 따라 품목 허가나 신고를 하지 않은 동물용 의약품을 진료에 사용하는 행위 등 3가지로 규정해 놓았다. 모두 수의사법과 수의사법 시행령에 따라 규제하고 있는 사안이다. 비도덕적 수의사를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은 빠져 있어 윤리위원회 설립과 면허정지 처분 등의 요청만으로는 내부 자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자체 처벌 못해
수의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동물병원 개설, 장소의 이전, 명칭 변경, 진료 수의사의 변경 등에 대해 수의사가 특별자치도지사ㆍ시장ㆍ군수 또는 자치구의 구청장에게 변경신고를 하도록 했다. 수의사가 동물병원의 개원과 관련해 지자체에 이를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지자체가 심의를 할 수 있는 규정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동물병원 신고 및 변경시 지자체에서 허가를 해주지 않을 경우 행정 소송을 해야 했다.
2011년 A수의사는 동물병원 명칭을 '00동물병원'에서 '0박사00동물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해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구청이 해당 명칭이 수의학 박사로 오인할 수 있는 기만적인 광고에 해당한다며 명칭 변경을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재판부는 수의사법에서 허위 과대광고를 규정하고 있지 않은 점과 대통령령으로 구청이 심의하도록 돼 있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 "동물병원 명칭이 허위 또는 과대광고에 해당하는지를 심사하는 것은 수의사법이 정한 수의사의 구체적 행위금지 유형인 '그 밖에 동물병원 운영과 관련된 행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위'를 심사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해 더 허용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지자체에서 허위 과대 광고를 심사할 권한이 있지는 않다고 본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수의사법 등 관계 법령에서 동물병원의 명칭 표시를 제한하는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고 있는 점에 비춰 허용될 수 없다"며 동물병원의 명칭은 허위광고와 과대광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개정된 수의사법에 따라 지자체에서는 동물병원의 개설과 이전, 명칭변경 등을 담당하고, 동물병원의 허위 또는 과장 광고에 대한 심의는 대한수의사회 윤리위원회로 분리됐다. 그러나 여전히 허위나 과장 광고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혼란은 불가피하다.
심의 규정 없는 윤리위
수의사법 시행령 제20조2(과잉진료행위 등)는 동물병원의 허위광고와 과대광고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허위광고 또는 과대광고만을 규제 대상으로 하고 있어 이를 악용하는 일부 동물병원도 나타나고 있다. 보호자 만족도 100%’, ‘수술 효과 100% 인정’ 등은 허위 및 과장 광고로 볼 수도 있지만 이를 검증하기 어렵다. ‘중성화 수술을 제일 잘하는 수의사’, ‘반려견을 위한 최고의 수의사’ 등 비교 대상이 없는 문구도 광고에 사용할 수 있다.
반면 의료법은 의료 광고에 위반되는 내용도 명시하고 있다. 의료법 제56조(의료광고의 금지 등) 2항에 따르면 ▲신의료기술에 관한 광고 ▲치료효과를 보장하는 내용 ▲비교하는 내용의 광고 ▲비방하는 내용 ▲시술행위를 노출하는 광고 심각한 부작용을 누락하는 광고 ▲근거가 없는 내용을 포함하는 광고 등을 금지하고 있다.
어떤 문구와 내용, 표현이 문제가 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의사들이 스스로 광고 문구를 검열할 수 있다. 또한 의료광고는 의협이 심의한 광고만 게재할 수 있다. 홈페이지나 SNS 등에 홍보하는 모든 광고가 의료광고심의위원회를 거치고 있다. 의료법에서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은 규정도 의료광고심의위원회 내규를 통해 사전에 통제하고 있다. 최고나 최초, 100% 등 최상급 표현은 소비자를 현혹시킬 수 있는 문구로 판단해 금지하고 있으며, '부작용이 없다'는 문구도 환자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주고, 객관성이 떨어지는 표현으로 광고 문구로 사용할 수 없다. 의료광고심의위원회가 의료법과 의료법시행령을 보수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을 사전에 걸러내고 있는 것이다.
반면 동물병원은 광고가 나가기 전에 이를 심의하지 않는다. 허위 광고나 과대 광고를 사전에 걸러낼 수 있는 기구가 없다 보니 사후약방문식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눈 수술 후 실명한 강아지의 수술 전후 사진을 바꿔 홍보용으로 이용한 동물병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피해자가 나온 이후에 허위광고에 대해 조사를 벌여 면허 정지 15일의 처분이 내려졌다. 사전에 동물병원의 광고를 심의할 수 있는 기구가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안이다.
수술 후기도 금지
의료법(제56조1항)은 의료기관 개설자, 의료기관의 장 또는 의료인이 아닌 자가 의료에 관한 광고나 알리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은 의료광고가 불가능하다. 일반인이 돈을 받고 소비자를 현혹시킬 수 있는 글을 올릴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인플루언서를 통한 동물병원 홍보다. 고정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인플루언서가 긍정적인 기사나 진료 후기를 올려 동물병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다. 해당 글이 허위광고나 과대 광고가 아닌 이상 동물병원 진료 후기에 대한 처벌은 어렵다. 반면 의료법에서는 일반인 뿐만 아니라 의료인이 수술 후기나 진료 후기를 올리는 것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성형정보 제공 앱에 가짜 수술 후기를 올려 병원을 홍보한 의사 5명이 벌금형을 받았을 정도로 규제 범위도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허위광고와 과대광고만을 규정하고 있는 수의계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강력범죄는 처벌 못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수의사에 대해서도 윤리위원회 처벌이 불가능하다.
윤리위원회는 수의사들의 윤리의식을 자율적으로 고취시키고, 수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역할을 위해 설립됐다. 수의계의 내부 자정 작용을 위한 목적이지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비윤리적 수의사는 윤리위원회 회부조차 할 수 없다.
동물을 돌봐야 할 수의사가 동물을 학대하거나 금품을 받고 허위로 업체에 유리한 연구논문을 작성한 수의사로 인해 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최근에는 수의사의 면허를 이용해 마약을 공급한 수의사가 적발됐다. 일부 비윤리적 수의사로 인해 전체 수의사에 대한 이미지가 실추됐지만 수의사의 품의를 손상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의료법은 의료인의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해 윤리위원회 회부가 가능하다. 의사 면허를 이용해 금품을 수수하거나 약국과 담합하는 행위도 의료인의 품위 손상 행위로 보고 있다. 수의사에 비해 보다 넓은 범위의 사안에 대해 윤리위원회 회부가 가능하다.
허가받지 않은 약물
개정된 수의사법에 따라 품목 허가나 신고를 하지 않은 동물용 의약품을 진료에 사용하는 수의사를 윤리위원회에서 심의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수의사들은 동물용의약품으로 허가받지 않은 약물을 ‘허가외약물’로 사용했다. 인체용의약품으로 처가를 받았지만 동물용으로는 허가 받지 않은 약물, 해외에서는 허가를 받았으나 국내에서는 품목허가를 받지 않은 약물 등 ‘허가외 약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나 수의사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품목허가를 받거나 품목 신고를 하지 않은 동물용의약품을 진료에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 수의사법 위반으로 처벌하고 있다. 대한수의사회장의 추천 및 검역본부에 신고한 동물용의약품은 예외로 하고 있지만 그동안 자유롭게 ‘허가외 약물’을 사용한 수의사들에게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한수의사회 윤리위원회는 품목 허가나 신고를 하지 않은 약물을 진료에 사용하는 수의사에 대해 심의할 수 있다. '허가외 약물'을 사용한 수의사에 대해 유통 문제가 아닌 동물 진료 행위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 개진도 가능해 임상수의사적으로 인정되는 진료 행위에 대해서는 면허정지처분을 내리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동물병원 전용 제품이 일반인에게 유통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규정조차 없다는 점이다.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처방되는 사료와 영양제 등은 엄격하게 관리돼야 한다. 신장이나 혈압 등의 문제가 있는 동물이 매일 먹는 처방사료는 장기간 잘못 먹일 경우 오히려 질병이 악화될 수 있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는 별도의 법률로 관리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일반인이 처방 사료를 쉽게 접하고 있다. 동물병원 전용 영양제와 처방사료를 일반인이 구매하고 있을 정도로 문제가 되고 있다. 대한수의사회 윤리위원회는 수의사의 ‘허가외 약품’ 사용에 대해 심의 의결을 할 수 있지만 동물병원 전용 제품의 유통 문제에 대해서는 규제할 방법이 없다. 수의계가 반쪽짜리 약물 규정이라 보는 이유이다.